미국 CLARITY Act와 암호화폐 토큰 분류의 미래…증권과 디지털 상품 기준은 어떻게 달라질까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온 규제 논쟁 가운데 하나는 ‘어떤 토큰이 증권이고 어떤 토큰이 상품인가’라는 문제입니다.
같은 암호화폐라도 발행 방식과 네트워크 운영 구조, 토큰의 실제 기능에 따라 법적 성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Digital Asset Market CLARITY Act, 이른바 CLARITY Act를 중심으로 포괄적인 디지털자산 시장구조 법안을 추진해 왔습니다.
하지만 2026년 10월 현재 이 법안은 아직 법률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상원 은행위원회는 2026년 5월 법안을 15대 9로 통과시켰지만, 9월 15일 상원 본회의에서 법안 심의를 진행하기 위한 종결 절차가 60표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실제 표결은 찬성 50표, 반대 49표였으며 절차 진행에 필요한 60표를 확보하지 못해 현재는 다시 정치적 협상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현재 미국 암호화폐 규제 환경을 이해하려면 CLARITY Act 자체뿐 아니라 SEC와 CFTC가 이미 발표한 암호자산 분류 지침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암호화폐는 왜 증권과 상품으로 쉽게 나누기 어려울까
전통적인 금융상품은 비교적 역할이 명확합니다.
주식은 기업의 소유권이나 경제적 권리를 나타내고, 채권은 채무 관계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암호화폐 토큰은 하나의 자산이 여러 기능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 수수료를 지불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거버넌스 투표에 참여할 수도 있으며, 스테이킹 보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개발팀의 노력에 따라 가치가 크게 좌우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네트워크가 충분히 분산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토큰 분류를 어렵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토큰을 구매하면서 특정 기업이나 개발팀의 노력으로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증권법의 적용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충분히 운영되고 있는 탈중앙화 네트워크에서 토큰이 실제 서비스 이용과 거래에 사용되고 가치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면 상품에 가까운 성격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특성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같은 토큰이라도 프로젝트 초기와 몇 년 후의 네트워크 구조가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토큰 이름이 무엇인가’보다 토큰이 어떤 방식으로 판매됐고, 누가 네트워크를 통제하며, 보유자가 어떤 권리를 가지는지를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CLARITY Act가 해결하려는 핵심 문제
CLARITY Act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SEC와 CFTC 사이의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미국 암호화폐 업계가 오랫동안 지적해 온 문제 가운데 하나는 특정 토큰이 SEC가 감독하는 증권인지, CFTC가 담당할 수 있는 디지털 상품인지 사전에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토큰 발행사뿐 아니라 거래소에도 영향을 줍니다.
거래소가 특정 토큰을 상장했는데 이후 해당 자산이 미등록 증권으로 판단될 경우 법적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거래소는 상장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미국 이용자에게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CLARITY Act는 디지털 상품과 증권의 경계를 보다 명확하게 정의하고, 각각에 대해 SEC와 CFTC가 어떤 권한을 갖는지 제도화하려는 시장구조 법안입니다.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명확한 규칙이 생기면 기업이 규제기관의 사후 집행을 기다리는 대신 처음부터 필요한 절차를 따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비판하는 측에서는 지나치게 넓은 비증권 분류가 기존 증권법의 투자자 보호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2026년에도 이러한 견해 차이가 이어졌고, 결국 상원에서 법안이 필요한 60표를 확보하지 못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상원 은행위원회 소수당 측은 투자자 보호와 불법 금융, 금융안정 문제 등을 이유로 당시 법안에 추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SEC와 CFTC는 이미 새로운 토큰 분류 기준을 제시했다
CLARITY Act가 입법 절차에서 정체됐다고 해서 미국의 토큰 분류 체계가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은 아닙니다.
SEC와 CFTC는 2026년 3월 17일 암호자산에 대한 새로운 공동 해석을 발표했습니다.
이 지침은 3월 23일부터 효력이 발생했으며 암호자산을 특성과 기능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 범주로 설명합니다.
디지털 상품(Digital Commodities), 디지털 수집품(Digital Collectibles), 디지털 도구(Digital Tools), 스테이블코인(Stablecoins), 디지털 증권(Digital Securities)입니다.
SEC는 이 가운데 디지털 상품과 디지털 수집품, 디지털 도구는 그 자체로는 증권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디지털 상품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암호 네트워크와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고, 토큰 가치가 특정 기업의 경영 노력보다는 네트워크의 프로그래밍된 운영과 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 형성되는 자산으로 설명됩니다.
SEC는 당시 기준으로 BTC와 ETH를 비롯해 XRP, SOL, ADA, DOT, LINK, AVAX, DOGE, LTC, HBAR 등 여러 자산을 디지털 상품의 사례로 직접 제시했습니다.
이 변화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은 ‘토큰 자체’와 ‘토큰이 판매되는 거래’를 구분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암호자산 자체가 증권이 아니더라도 판매 과정에서 투자계약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비증권 토큰이라도 발행사가 투자자에게 자신의 경영 노력으로 수익을 만들어주겠다는 방식으로 판매한다면 해당 거래는 증권법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과거 투자계약과 연결돼 판매됐던 토큰도 시간이 지나 네트워크와 판매 구조가 달라지면 계속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토큰을 한번 증권으로 판단하면 영원히 증권으로 보는 단순한 구조에서 벗어나 거래 방식과 네트워크 상태를 함께 평가하려는 접근입니다.
다만 SEC의 이번 해석은 의회가 제정한 새로운 법률과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SEC 스스로도 이번 지침을 의회의 포괄적인 시장구조 법안 작업을 보완하는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토큰 분류가 거래소와 기관투자에 미치는 영향
규제 분류가 명확해지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거래소입니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어떤 자산을 어떤 규제 체계에서 거래할 수 있는지 예측 가능해집니다.
증권으로 분류된다면 증권 거래와 관련된 등록 및 투자자 보호 규정을 따라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디지털 상품으로 명확하게 분류된다면 상품시장 규제 체계에 맞춰 사업 구조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토큰의 미국 시장 접근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법적 지위가 불명확한 자산은 거래소가 상장을 꺼릴 수 있지만 분류 기준이 명확하면 법률 검토 비용과 규제 위험을 낮출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관투자자에게도 규제 명확성은 중요합니다.
개인 투자자는 불확실성이 존재해도 자산을 거래할 수 있지만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은행 등은 투자 가능한 자산에 내부 규정과 법적 제한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토큰의 법적 지위가 불명확하면 수탁과 회계, 위험관리, 규제 보고 등의 문제로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규제 명확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특정 암호화폐 가격이 자동으로 상승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관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벽을 낮추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습니다.
토큰 가치평가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규제 불확실성이 큰 프로젝트는 시장에서 일종의 ‘규제 위험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언제 증권으로 판단될지 모르고 미국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투자자는 그 위험을 가격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법적 구조가 명확해지면 기술과 사용자, 매출, 네트워크 활동 등 기본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평가하기 쉬워질 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탈중앙화’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토큰 분류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탈중앙화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입니다.
프로젝트마다 구조가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검증자 수가 많다고 반드시 탈중앙화됐다고 볼 수도 없고, 토큰 보유자가 넓게 분산돼 있다고 해서 개발 권한까지 분산돼 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실제로 탈중앙화를 평가하려면 여러 요소를 함께 봐야 합니다.
누가 프로토콜 코드를 변경할 수 있는지, 네트워크 운영을 중단할 수 있는 관리 권한이 존재하는지, 토큰 공급이 특정 재단이나 기업에 집중돼 있는지, 거버넌스 결정에 한 주체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등이 중요합니다.
SEC의 2026년 해석에서도 기능성과 네트워크 통제 구조가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합니다.
SEC는 기능하는 암호 시스템과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핵심적인 경영 노력에 대한 의존성 등을 토큰 분류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가 변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한 기업이 대부분의 개발과 운영을 담당하지만 이후 오픈소스 개발자와 독립 검증자가 늘어나면서 통제력이 분산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에는 분산돼 있던 네트워크에서도 특정 기업이나 재단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토큰을 한 번 분류한 뒤 영구적으로 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보다 네트워크 변화에 따라 상태를 다시 평가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CLARITY Act가 멈춰도 토큰 분류 논쟁은 계속된다
2026년 미국 암호화폐 규제에서 중요한 변화는 ‘아무런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는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SEC와 CFTC는 이미 암호자산 분류에 관한 구체적인 해석을 발표했고, 디지털 상품과 디지털 증권 등의 구분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의회 차원의 CLARITY Act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2026년 9월 상원 절차표결 실패로 법안이 사실상 정체됐고, 다시 추진하려면 추가적인 정치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규제기관이 발표한 해석과 지침은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의회가 만든 법률만큼 제도적으로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향후 SEC나 CFTC의 지도부와 정책 방향이 변경되면 일부 해석도 수정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SEC 역시 2026년 8월 의회의 시장구조 법제화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따라서 암호화폐 시장에서 토큰 분류의 미래는 두 가지 축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는 SEC와 CFTC가 현재 권한 안에서 얼마나 명확하고 일관된 규칙을 만드는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의회가 결국 CLARITY Act 또는 수정된 형태의 시장구조 법안을 통과시켜 SEC와 CFTC 사이의 역할을 법률로 확정할 수 있는지입니다.
장기적으로 규제 명확성이 높아진다면 거래소 상장과 기관 참여, 토큰 발행 구조가 보다 표준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분류 과정에서 더 높은 공시와 등록, 소비자 보호 기준이 적용되면서 일부 프로젝트는 미국 시장에서 사업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규제 명확성은 단순히 암호화폐 산업에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토큰은 보다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지만 다른 토큰은 오히려 명확하게 증권 규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앞으로 암호화폐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것도 단순히 ‘이 토큰은 증권인가 아닌가’라는 질문만이 아닙니다.
토큰이 어떤 권리를 제공하는지, 네트워크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개발팀이나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토큰 판매 방식이 투자계약의 성격을 갖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미국의 토큰 분류 체계가 향하는 방향은 모든 암호화폐를 하나의 규제 틀에 넣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제적 기능과 네트워크 구조에 따라 서로 다른 규칙을 적용하는 방식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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